제1장

제지사업에 진출하여 성장기반을 구축하다 (1966~1982)

  • 1966년 3월 대한팔프공업주식회사가 출범했다. 깨끗한나라 55년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1950년대 산업 불모지였던 이 땅에 제지산업의 초석을 놓은 1세대 제지인 최화식 창업주는 산업보국의 경영이념과 진실을 사훈으로, 펄프 국산화와 제지산업의 부흥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사업 초기 펄프에서 판지로 생산품목을 변경하고, 의정부공장을 준공하며 생산기반을 구축했다. 현대식 설비를 갖춘 대단위 규모의 의정부공장은 회사는 물론 국내 제지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주역이었다. 이와 함께 정직하고 진실하며 화합하는 고유의 문화를 조성해 나갔다.
    창립 9년 만인 1975년 기업공개를 통해 국민의 기업으로 거듭났으며, 이를 계기로 해외로 눈을 돌려 ‘화이트 호스’ 자체 브랜드로 홍콩에 직접 수출하는 등 세계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신양제지를 인수하고 의정부공장을 증설하는 등 사세도 확장했다. 외형 못지않게 내실도 기해 종이컵 원지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등 기술 혁신 및 제품 개발을 도모하고 품질 및 생산성 향상을 제고하며 토종기업의 위상을 드높였다.
    장치산업 특성상 설비에 투자해야 하는 자금부담이 크고 1970년대에 불어닥친 두 차례의 오일쇼크 등 기업 환경은 녹록하지 않았지만 대한팔프는 성장 기반을 착실히 다지며 우리나라 제지산업의 선진화와 부흥을 향한 도전을 이어갔다.
    그러던 1980년 11월, 창업주 최화식 사장이 영면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회사 발전과 제지산업에 헌신해온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대한팔프 전 구성원은 슬픔을 딛고 고인의 정신과 그 꿈을 받들어 나갈 것을 다짐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4. 판지업계 최초로 기업공개 1975

    기업 안정성을 바탕으로 기업공개 추진

    1975년 6월 대한팔프는 국내 판지업계로는 최초로 기업을 공개했다. 창업 9년만의 일이었다. 기업공개는 1968년 정부가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면서 그 초석이 마련됐다. 국내기업이 타인자본과 극소수의 대주주들에게 의존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을 분산시키고 민간자본을 광범위하게 동원할 수 있는 투자 여건을 마련하여 기업의 자금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는 데 목적이 있다. 도입 초기 정부는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부여했지만 기업공개에 나서는 회사는 많지 않았는데, 이는 기업 경영 및 투자 여건 등을 일반에게 공개한다는 점에 대한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대한팔프는 창업 초기부터 기업공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회사의 기반을 닦고 경영 안정을 이룬 후 기업을 공개한다는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1973년 본격적인 흑자경영 실현을 계기로 이듬해부터 기업공개를 적극적으로 준비했다. 기업경영을 합리화하고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해 노사협력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으며, 주식의 대중화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 증자 및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장치산업의 특성을 가지는 제지산업은 설비의 도입 및 운용에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고 제조원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화학펄프는 국내 생산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타인자본에 상당부분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 확보를 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이점이었다.
    회사의 재무상태도 문제가 없었다. 1974년 대한팔프는 매출 49억 원에 2억 4,000만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납입자본금은 9억 원이었으며, 기업의 안정성을 말해주는 부채비율이 78%로 타인자본 의존도가 상당히 낮았다. 또 대외지급능력의 지표인 유동비율은 152%, 수익성과 직결되는 자기자본이익률은 32.4%로 재무상태가 양호했다. 판지의 생산능력은 1974년 당시 연산 4만 2,000톤으로 국내 전체 판지생산능력의 20%를 차지했다. 주 거래처는 해태제과, 동양제과, 한일합섬 등으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어 경영 안정성이 우수했다. 판지업계의 유일한 KS 표시 제품 생산업체로 제품의 품질도 매우 우수했다. 1974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 가입해 업계 상생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등 기업의 위상도 높아졌다.
    이처럼 대한팔프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며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시설투자와 기술 및 품질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신용을 기반으로 거래처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 발전시켰기 때문이었다. 우수한 제품을 적기에 납품함으로써 거래처의 수출이 신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공개 시 발행한 주식상장신규안내서(1975)


    대한팔프공업 주식청약 공고(경향신문, 1975. 6. 9)

    수출은 기업공개를 추진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1974년까지만 해도 대한팔프는 로컬 수요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었으나 회사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국내를 넘어 직접 수출에 나서야 했다. 따라서 1975년 수출 목표를 150만 달러로 정하고 직접 수출을 추진했다. 직접 수출을 통해 매출 증대는 물론 구성원에게 자긍심을 주고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에 기여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인지도를 높이고 원활한 자금확보가 필요했다. 기업공개 추진은 이러한 목적과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 기업공개로 대외 신인도 및 자금 확보 능력 제고

    대한팔프는 1975년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구주 20만 주와 신주 10만주를 합해 모두 30만주를 공모했다. 삼보증권이 간사 주선기관이었으며, 경향신문 등에 주식청약 안내문을 공고했다. 공모주식은 액면가격이 신구주 각각 1,000원으로 구주 2억 원, 신주 1억 원을 합해 모두 3억 원이었다. 기업공개에 앞서 6월 2일 180명의 사원으로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고, 공모액의 10%인 3만 주를 배당했다. 대한팔프가 신주 1억 원을 발행함으로써 불입자본금은 기존의 9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를 계기로 대한팔프는 로컬 수요의 우선 공급에서 벗어나 직수출 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기업 신인도 제고는 물론 보다 원활하게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기업공개 효과는 즉시 나타나 그해 6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상장 이듬해 대한팔프 주가는 60%가 신장하는 등 주가곡선이 가파르게 올랐는데 이는 영업실적이 크게 호전됐기 때문이며, 동남아시장에 판지를 직접 수출하는 등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