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나라의 리더,

진실의 리더십

  • 원칙과 신뢰를 협주하다 _ 최병민 회장

    최화식 창업주의 타계로 인한 공백을 채우고 깨끗한나라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다져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최병민 회장은 기업 안팎의 변화에 주목해 기업과 고객의 친화력을 강조하는 한편, 누구나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솔선수범함으로써 창업 이래 면면하게 이어진 기업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리더십을 끌어올렸다.

  • 행동과 실천의 해결 능력을 갖춘 모멘트 리더

    “우리는 단순히 종이를 팔지 않는다. 종이와 함께 우리만의 문화를 판다. 깨끗한나라의 기업문화는 곧 우리들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깨끗한나라’는 우리 자신과 고객에게 수준 높은 자신감을 전달하는 이름이다.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1983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최병민 회장은 기업 현실을 동태적으로 파악하고, 조직의 미래에 새로운 동력을 부여하는 것에 자신의 리더십을 집중했다. ‘진실’과 ‘소통’을 근간으로 기업 경영의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다져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최병민 회장은 기업 안팎의 변화에 주목해 기업과 고객의 친화력을 강조하는 한편, 누구나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솔선수범함으로써 창업 이래 면면하게 이어진 기업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리더십을 끌어올렸다.
    한편으로 최병민 회장은 당면 과제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난제로 여겨질 때, 주위에서 모두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일에도 특유의 행동력과 실천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한 모멘트 리더(Moment Leader)였다. 꿈쩍도 않을 것처럼 어려운 난제를 투지로 해결하는 능력을 보이는 모멘트 리더십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 ‘진실’ 추구, 소통을 열다

    1980년 최화식 창업주의 타계는 대한팔프뿐만 아니라 국내 제지업계의 크나큰 손실이었다. 공백을 빈틈없이 채우고, 창업주의 유지를 이어갈 막중한 임무가 최병민 회장에게 주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병민 회장은 창업 이래 일관되게 지켜온 경영의 근본을 지속하고, 위기를 이겨냄으로써 깨끗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리더십을 제시해야 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요구됐다. 기업가 정신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생산 요소를 새롭게 조합, 조정하면서 이를 통제하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자본을 투자하고 경영을 담당하려는 도전적인 성향이 창업을 이끌기 마련이다. 최화식 창업주는 자신의 삶의 체험으로부터 기업 경영의 틀을 세우고, 이를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는 신념으로 대한팔프를 창업했다.
    최병민 회장이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정신적인 유산은 ‘진실’이었다. 창업 이래 대한팔프가 지켜온 ‘진실’의 바른 의미를 유지하고, 이를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사내 구성원들의 감동이 우선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첫 관문이 신뢰였다.
    2004년 대한펄프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조 단체협약 과정에서 백지위임 등 노사화합 성과를 거두었다. 위기 상황에서 노사가 함께한 이러한 사례는 최화식 창업주가 현장기술자들을 특별히 우대하고 존중함으로써, 리더에게로 향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노사협력의 전통이 기업문화 전반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매우 컸고, 이는 곧 고객에게 돌아갔다.
    최병민 회장은 진실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신뢰를 쌓기 위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원칙을 세우기 위해 힘썼다. 여기에는 소통의 문을 여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최병민 회장이 그 출발점에 ‘진실’을 두었던 까닭은 그것이야말로 대한팔프의 오랜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원칙과 신뢰를 일으켜 세우는 데 불가결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더십은 깨끗한나라가 토종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대내외에 드높이는 성과를 가져왔다.
    1993년 대한펄프가 생산성 대상에 이어 제지업계 최초로 5천만불 수출의탑을 수상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은 최병민 회장이 철탑산업훈장을 수여받기까지 진실은 사내외를 막론하고 신뢰를 축적하는 힘이 됐다. 전 직원이 함께 협력해 거둔 이같은 소중한 결실의 출발점에는 불통을 허물고 소통을 열기 위한 최병민 사장의 리더십이 구심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제30회 무역의날에 철탑산업훈장을 수훈한 최병민 회장(1993. 11. 30)

  • 데이터에 기반해 경영의 현대화를 이끌다

    대한팔프는 한때 국내 100대 기업에 오른 적이 있었으나, 1980년대에는 그만한 사세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최병민 회장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였다.
    1978년 최병민 회장이 입사한 당시 대한팔프에는 이렇다 할 데이터베이스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일원화된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는 기업 현황을 분석하고 문제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경영전략을 세웠다 해도 애초의 목적이 상실되어 유효한 효과를 남기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최병민 회장은 생산 시설의 현대화 못지않게 경영의 현대화가 절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최고경영자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하고는 했다. 지휘자라면 마땅히 각 부문의 연주를 책임지는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했다. 각기 다른 연주를 소화하기 위해 먼저 힘을 합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했다.
    최병민 회장은 그 활로를 미국 유학 시절 공부한 데이터 분석에서 찾았다. 미국 유학 시절 MBA 과정을 밟으면서 공부한 내용은 학문으로서의 경영보다는 기술으로서의 경영이었다. 앞을 내다보는 힘을 키워 주는 기술이었다.
    최병민 회장이 입사하던 당시 대한팔프의 기업 규모는 바로 그러한 경영 기술을 적용하기에 최적인 상태였다. 대기업의 조직에 갇혀 있었다면 오히려 힘써 배워온 선진 경영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었을것이다. 최병민 회장은 기업 규모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켰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확한 시장 분석을 도입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유효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최병민 회장은 1990년대 들어서는 매년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각종 기술세미나와 전시회에 직원을 파견해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분석하는 한편, 연구개발을 통해 고객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1995년, 업계 최초로 ISO 9002를 획득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용기를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용기로 대체해 FDA로부터 적합승인을 얻은 것도 세계 제지시장이 요구하는 기준을 갖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국내 상위 제지업체들이 대부분 외국의 다국적기업과 합작 또는 기술제휴를 체결한 데 반해, 대한펄프는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브랜드로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 토종기업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다.

  • 과감한 결정, 민첩한 대응

    1980년대 들어 국내 제지업계는 공급능력이 수요를 웃돌았다. 그 동안 생산에 집중해 온 제지업계는 그 무렵에 와서야 원가 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최병민 회장은 이보다 한발 앞서 설비 현대화 작업에 착수해 지절 감소 등 생산성을 향상하고 품질을 크게 개선해나갔다.
    포장용으로 널리 쓰이는 마닐라보드지를 생산하던 대한팔프는 1982년 7월 제품판촉과 업종다각화를 위해 포장업에도 진출했다. 대한팔프가 개발한 운반용 종이상자는 병이나 깡통 등을 몇 개씩 포장할 때 상자의 좌우면을 없애고, 윗면에는 구멍을 뚫어 병 주둥이가 물리게 함으로써 포장비를 절감한 것이었다. 대한팔프는 우선 국내 제약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드링크 종류부터 이러한 방법으로 포장해나갔다. 상자의 각 면이 서로 겹치지 않고 엇갈려 물리게 되어 있으므로 종전보다 무려 40%가량의 포장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아울러 1983년 의정부공장에 20억 원을 투입, 1호기에 더블코터기, 더블 커팅기, 딩킹시스템을 각각 보완해 시험가동을 마치고 11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 기계 설치를 위해 일본 및 스웨덴에서 최신 시설을 도입해 연산 8만 톤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판지 외에 종이컵 원지, 테트라팩 원지등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Carry Board를 이용한 포장 제품들

    대한팔프가 1980년대의 성장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처럼 시장 대응을 위해 내린 최병민 회장의 과감한 결정에 있었다. 판지 하나에 매달리지 않고 산업사회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종이컵 원지, 화장지 등을 적절하게 내놓으면서 상호보완적인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특히 대한팔프가 1988년 1월 제지 1호기와 화장지 1호기를 갖춘 대단위 규모의 청주공장을 준공하며 도약의 발판을 구축한 이후, 최병민 회장은 제조 인프라를 청주공장으로 단일화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제지 설비는 물론 화장지 및 생리대 설비를 연이어 증설하며 국제적 규모를 갖추고 품질 향상과 생산성 제고를 견인해 나갔다.
    청주공장 준공과 함께 의정부공장에서 생산하던 수출용 제품과 종이컵 원지 생산 시설을 이관하고 새로운 설비 증설도 마쳤다. 청주공장을 수출 전문 지종 생산과 부가가치 제품 생산의 인프라로 정착시키고, 1990년대 중반까지 모든 펄프 제품의 수입대체를 실현한다는 목표 아래 지속적으로 시설과 기술투자를 늘려나갔다. 공장 통폐합은 단순히 생산시설의 통합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의정부 공장과 서울공장에서 제품의 고급화를 도모하기에 한계가 있었고, 생산설비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업무 효율 및 체계적 관리가 불리했으나, 이러한 문제를 공장 통폐합이라는 대결단을 통해 일거에 해결한 것이다. 무엇보다 사무기기의 통폐합 등을 통해 관리체계의 효율성을 확립함으로써 이를 사내 소통의 활로 개척으로 연결하는데 매진하는 등 전방위적인 변혁을 이끌 수 있었다.
    청주공장은 1995년 8월 화장지 3호기, 1996년 1월 생리대 4호기를 준공하는 등 백판지와 종이컵 등은 물론 화장지와 생리대 및 기저귀 제조설비까지 모두 갖춘 대한펄프의 주력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 고객 감동의 원천, 무한한 신뢰의 구축

    최병민 회장은 품질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이를 소비자 만족 전략과 연결하는 과정에서 더 큰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발견해나갔다. 앞을 내다보면서 남보다 앞서 나가는, 이기는 전력을 세웠다. 그리고 모든 전략의 원천과 최종 목적을,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이러한 원칙을 지켜 소비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에 두었다. 고객에게 칭찬받고 고객이 좋아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최병민 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장과 멀리 떨어져 업무를 지시하고 보고받기보다는 함께 뛰면서 사람들과 만나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최고경영자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솔한다는 과거의 통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사 표현을 개진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솔직하게 공개하고 협조를 구했다.
    아울러 일의 절차와 결과에 있어서는 엄격한 원칙과 표준을 제시해 대한펄프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했다. 이어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조직구조를 보강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을 높였다. 이를 제도로 뒷받침함으로써 경영혁신을 거듭할 수 있는 반석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고객이 감동할 수 있는 무한한 신뢰를 구축해나갔기 때문이다.
    대한펄프가 1993년 당시 세계 20여 국가에 5,600만 달러 상당을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그 결과 5천만불 수출의탑과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최병민 회장의 의지와 원칙 아래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선 다변화에 더욱 주력한 덕분이었다. 대한펄프는 이를 계기로 고객에게 만족을 줄수 있는 제품 개발에 힘쓰는 가운데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종합제지 및 생활용품기업으로 발돋움했으며, 이로부터 7년만인 2000년에는 1억불 수출의탑과 함께 최병민 회장이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다. 같은 해 수출 규모는 1억 125만 달러 규모로, 전년도의 7,000만 달러에 비해 40%이상 성장했으며, 전체 판매량 중 수출비중도 전년도의 52%에서 57%로 증가했다. 이는 중국, 홍콩,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서 수출 주력제품인 ‘화이트호스’, ‘깨끗한나라’ 브랜드의 백판지, 컵 원지, 화장지 등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데 힘입은 결과였다.

    뉴질랜드 출장길에 나선 최병민 회장(1986)

  • 앞서가는 리더십, ‘매직스’ 마법의 마케팅을 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회용 생리대가 시장에 등장한 것은 1971년, 킴벌리의 한국지사인 유한킴벌리에 의해서였다. 대한팔프는 1987년 첫 여성용품 생리대 브랜드 ‘라라센스’를 출시하면서 생리대 시장에 등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생리대 시장에서는 유한킴벌리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1989년 미국의 P&G 사에서 위스퍼를 앞세워 한국시장에 진입했다.
    대한팔프는 1990년 7월 드라이 매직커버를 사용한 고급 생리대 휘네스 드라이를 시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생리대 시장에 도전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생리대 시장에서는 유한킴벌리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1991년, 마침내 ‘매직스’를 선보였다. 광고 카피로 “한 달에 한 번 여자는 마술에 걸린다”를 내세웠다. 제품 이름에 ‘매직(Magic)’이 들어간 데서 비롯된 이 카피는 아직도 생리대 광고 카피의 독보적인 전설처럼 남아 있다. 이 광고가 화제가 되면서 ‘생리’라는 단어 대신 ‘마술’, ‘마법’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법에 걸렸다’가 여성의 월경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용어로 자리잡을 정도였다.
    매직스는 생리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매직, 즉 마술로 승화시켜 생리의 신비로움을 매직스 브랜드로 표현했는데, 이는 제품의 외형 색상인 보라색과 잘 매치됐다. ‘부드러움’이라는 촉각에 소구한 감각마케팅도 크게 주목받았다.
    최병민 회장은 매직스 브랜드 전략의 출발점을 생리하는 여성의 신비로움, 위대함에 두도록 했다. 생리기간 중 불쾌한 기분,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부드러운 마술 매직스에 걸어 편안하고 부드럽게 그날을 함께 하자는 의도로 브랜드를 네이밍한 것이다.05)
    매직스 광고는 몇 차례 모델과 내용이 바뀌었지만, 한 단어 ‘부드러움’은 바꾸지 않고 광고의 카피로 사용했다. 부드러운 상상, 부드러움, 부드러움의 차이, 부드러운 비밀 등 소비자에게 ‘부드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생리대 광고에서는 볼 수 없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남자 연예인 고수를 모델로 했고, 건강을 강조하면서 여성 교양강좌, 건강강좌 혹은 대학과의 연계 등을 통해 협찬 또는 후원하는 형태로 판촉 마케팅을 진행했다. ‘마법(Magic)’으로 상징된 제품명을 통해 신비로움을 강조해 감성을 자극한 것도 주효했다. 같은 시기에 P&G는 위스퍼 울트라 슬림을 출시하면서 생리대의 슬림화를 주도하는데, 이 상품으로 후발주자였던 P&G가 시장을 리드하게 된다. 1995년에는 유한킴벌리에서 화이트를 출시하고, 날개형 생리대도 보급했다. 1999년이 되자 유한킴벌리는 화이트로 공중 화장실 자판기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수많은 샘플을 뿌렸으며, 획기적인 TV광고의 성공으로 P&G의 위스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본 유니참(Unicharm)의 합작사인 쌍용유니참(현 LG유니참)에서 만들고 제일제당에서 유통한 ‘쏘피(SOPY)’라는 제품이 출시되면서, 생리대 시장은 크게 화이트, 위스퍼, 매직스. 쏘피의 4사 경쟁 구도로 들어갔다.
    최병민 회장은 대한펄프가 경쟁사보다 늦게 여성위생용품 사업을 시작했고 소비자들의 성향이 쓰던 제품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샘플에 의한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매직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알리는 데 주력하도록 했다. 일단 한번 사용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다. 매직스는 제품전략에서 한발 앞서갔다. 가장 큰 변별력인 커버의 부드러움을 내세우는 한편, 이어진 제품의 다양화와 함께 포장, 디자인, 종류 등에 변화를 주어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했다. 겉포장 전체를 짙은 보라색의 겉포장을 채택했는데, 이는 타사의 제품 포장과 비교했을 때 훨씬 어둡고, 산뜻하거나 깨끗한 느낌보다는 ‘신비로움’을 강조했으며 200년대 들어서는 개별포장에 원터치 방식을 채택해 제품의 차별화를 꾀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전설의 명카피가 등장하기까지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기 위한 최병민 회장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됐다. 그러나 유한 킴벌리와 P&G가 워낙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제품의 특성상 상표 전환이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회사가 시장에 새로 진입해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새로운 고객을 인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장도 아니었다. 매직스는 아쉽게도 브랜드 명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졌다.

    05) 대한펄프 마케팅실 소비자 실태조사보고서, 2003. 6.

  • 브랜드 리더십의 성과, 브랜드파워의 탄생과 진화

    ‘깨끗한나라’ 브랜드 도입과 사명 교체
    최병민 회장은 창업 이래 제지사업만으로 운영해오던 대한팔프의 사업구조에 일대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1985년 금강제지를 인수, 화장지 생산에 뛰어든 이후 생산품목을 생리대와 아기기저귀 등으로 다각화하면서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예고했고, 이듬해 1988년에는 대단위 규모의 청주공장을 준공하며 격변하는 시대를 향해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대한팔프는 1976년 신양제지를 인수한 뒤 컵 원지를 개발하며 사세를 크게 확장하던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대대적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최병민 회장은 ‘깨끗한나라’ 브랜드를 전격 도입함으로써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브랜드 리더십을 강화하고, 기업의 정체성을 더욱 긍정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러한 브랜드 리더십은 리더십이 개인의 특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조직의 외부 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기업 명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한팔프의 화장지시장 진입은 사업 구조의 변화도 변화였지만 창업 이래 제지사업의 큰 틀을 유지해온 대외적인 이미지는 물론 새로운 정체성을 일깨웠다. 1997년 5월 화장지 브랜드로 탄생한 ‘깨끗한나라’의 출발이 바로 이러한 변화를 외부에 전달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아울러 최병민 회장은 “진실한 마음이 깨끗한나라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함께 사용하면서 창업 이래 지켜온 대한팔프의 내적인 가치체계에 대해 폭넓은 공감을 불러올 수 있었다.
    1966년 3월 ‘대한팔프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 이래 깨끗한나라는 1991년 주식회사 대한펄프, 2011년 깨끗한나라로 거듭나며 사명을 변경했다. 사명이 대한팔프였던 1980년대까지 기업광고와 제품광고에서도 ‘대한팔프’를 사용하다가,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1991년 대한펄프로 이름을 바꾸면서 1994년 하반기부터 슬로건을 ‘좋은펄프 대한펄프’로 내세워 로고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생긴 브랜드인 깨끗한나라 로고를 대한펄프의 로고로 사용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깨끗한나라(주)로 사명을 교체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라라’에서 ‘깨끗한나라’로, 고객을 사로잡은 화장지 브랜드
    ‘깨끗한나라’ 브랜드를 도입하기 전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대한팔프의 화장지 브랜드는 1986년 부드러운 감촉을 소구하며 등장한 두루마리 화장지 ‘라라’와 ‘루키’였다. 1987년 첫 여성용품 생리대 브랜드 ‘라라센스’, 1988년 최초 아기기저귀 브랜드 ‘라라마미’ 등의 출시 이후 ‘라라’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가 10년째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라라’는 처음 등장한 이후 그 자체로 줄곧 고객의 사랑을 받은 브랜드였다.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소설 닥터 지바고의 여주인공 이름인 라라 안티포바에서 착안했다. 1958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정작 러시아에서는 30년 동안 금서(禁書)로 묶여 있다가 1988년에야 비로소 출판됐다.
    최병민 회장은 눈이 덮인 순백의 벌판을 연상하게 하는 ‘라라’에 ‘깨끗한’을 수식해 ‘깨끗한 라라’, ‘클린 라라’라는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이끌어냈다. 이를 여러 차례 다듬은 끝에 최종적으로 탄생한 이름이 바로 ‘깨끗한나라’였다.
    1997년 5월 10일, 대한펄프는 수십 차례 소비자들의 취향을 조사해 화장지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요구하는 ‘깨끗함’에 초점을 맞춰 마침내 화장지 브랜드 ‘깨끗한나라’를 개발했고 순수 한글 상표명으로 초기부터 소비자에게 많은 관심을 모았다. 또한 이를 마케팅 전 분야에 일관되게 적용해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심벌을 제작하고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어린아이를 광고 모델로 등장시켜 ‘온 세상이 깨끗해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한펄프의 화장지 브랜드 ‘깨끗한나라’ BI(1997)

    꼬마 1: 온 세상이 깨끗해요.
    남 NA: 깨끗한 화장지 깨끗한나라 훨씬 촘촘하고 잘 닦입니다.
    꼬마 1: 이만큼 깨끗해요.
    여 NA: 깨끗한 화장지 깨끗한나라.
    여자 1: 깨끗해요.
    남 NA: 좋은펄프 대한 펄프

    “온 세상이 깨끗해요”를 주제로 한 광고와 함께 등장한 ‘깨끗한나라’ 브랜드는 단숨에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대한펄프의 인지도를 높였다. ‘깨끗한’은 단순히 의학적으로 무독(無毒)한 개념으로서 ‘클린’을 뜻한 것만이 아니었다. 소비자들은 이 브랜드에서 1990년대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윤리적인 측면을 호소하고 있다는 함의를 읽어냈다. 화장지를 소비하는 고객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마음에 와닿는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2002년에 나온 광고가 바로 이러한 국민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깨끗한 나라를 원하니?
    깨끗한나라에서 만듭니다.
    깨끗한 나라

    브랜드 파워는 광고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얻어질 수 없었다. 크리에이티브한 광고는 대행사를 통해서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기본적인 콘셉트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의 속성은 결국 기업 내부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최병민 회장은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과감하게 브랜드 전략을 리드한 끝에 오늘의 ‘깨끗한나라’를 선택할 수 있었다.
    화장지 대표 브랜드인 ‘깨끗한나라’는 1997년 첫선을 보인 뒤 소비자에게 ‘깨끗한 제품’, ‘깨끗한 환경’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며 화장지 카테고리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천연펄프 원단을 활용해 부드러운 감촉과 흡수력을 강화한 두루마리 화장지, 먼지 없는 미용티슈 등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고품질 제품을 선보이며 고객으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깨끗한나라’는 초기 2겹 화장지를 중심으로 먼지가 적고 부드러운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의 사랑을 받으며 히트상품이 됐다. 이후 위생, 건강, 심미성, 기능성 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반영해 100% 천연펄프, 3겹, 향, 프린팅, 데코엠보싱공법 등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연구개발 성과를 접목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런 노력이 인정받아 2005년에는 한국소비자 웰빙지수(KWCI) 안정성 대상 화장지 부문 1위를 수상했다.
    여기에 고품질 제품을 위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제품의 우수성을 알려왔으며 소비자 감성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이어가며 시장 내 차별적인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2015년에는 최신설비의 공정을 통해 두께감은 향상시키고 원지 그대로의 부드러움을 구현한 프리미엄 화장지 브랜드 ‘촉&감’을 선보였다.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를 맞이하는 최병민 회장(1996)

    ‘보솜이’, 국내 최초 국산 기술 아기기저귀 브랜드의 탄생
    1988년 9월 대한펄프는 아기기저귀 브랜드로 ‘라라마미’를 내놓았다. 이후 엘핀스(1991), 뉴마미슬림(1992), 뉴엘핀스(1993)를 거쳐, 1995년 2월에 마침내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아기기저귀 ‘보솜이’ 브랜드를 론칭하기에 이르렀다.
    아기기저귀 패밀리 브랜드 ‘보솜이’는 ‘아기를 울리지 마세요’라는 콘셉트를 적용한 신규브랜드로, 언제나 뽀송한 느낌을 유지하는 차세대 감성 기저귀를 부각시켜 홍보에 들어갔고, 1년간 72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2.9mm로 얇은 두께를 자랑했다. 여러번 재사용 가능한 접착테이프 방식을 적용하고, 3차 흡수 시스템과 특수부직포, 통기성 커버를 사용했다. 보송보송한 천 느낌을 주는 재접착이 가능한 매직테이프로 출시한 이후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통해 부드러운 감촉과 흡수력을 강화한 우수한 제품을 내놓으며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다.
    ‘엄마품처럼 부드러운 기저귀’라는 슬로건과 함께 등장한 ‘보솜이’는 출시되자마자 소비자들로부터 탁월한 흡수력을 인정받으며, 부드러운 촉감을 지닌 아기기저귀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그후 아기 체형과 피부에 맞는 체계화된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소비자의 호평을 받았다. 대표 제품은 2004년 출시한 ‘보솜이 천연코튼’으로 국내 최초로 순면을 함유한 부드러운 기저귀이다. 2009년 올리브 보호막을 추가한 천연코튼 제품을 출시했다. 이어 2012년에는 아기 피부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들의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피부 손상을 최소화한 새로운 프리미엄 저발진 기능성 기저귀 ‘보솜이 베비오닉’을, 2016년에는 독자기술로 개발한 ‘릴렉싱-코튼TM’을 적용해 부드러움을 극대화한 ‘보솜이 천연코튼’와 함께, ‘자연에서 온 피부처방이 아기피부를 더욱 건강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3년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농지에서 건강하게 재배, 생산한 목화(오가닉코튼)을 사용해 친환경 순면 유기농기저귀 ‘보솜이 디오가닉’를 출시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라라센스’에서 ‘순수한면’으로, 여성위생용품 브랜드의 진화
    깨끗한나라의 첫 여성위생용품 브랜드는 1987년 6월 출시한 ‘라라센스’였다. 이를 시작으로 1990년 7월 드라이 매직커버를 사용한 고급 생리대 ‘휘네스 드라이’ 시판에 이어 12월에 ‘MDK매직스’가 탄생했으며, 2000년 5월 10대들의 활동을 고려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한 10대 전용 생리대 브랜드 ‘오키도키’를 출시했다. 앞뒤 샘방지 2중 안심라인이 특징인 이 생리대에 이어 2003년 5월에는 고급스러운 심벌과 포장으로 팬시상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프리미엄급 생리대 ‘매직스 프린세스’가 등장했다. 2005년 7월에 출시한 ‘구름위에 앉다’는 8년째 독주하고 있는 유한킴벌리를 추격해 만년 3위를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으로 마케팅 총공세에 들어갔으며, 3차원 입체커버가 생리혈을 빠르게 흡수, 역류를 방지하도록 만들었다.
    2011년 3월 출시한 ‘릴리안’은 대중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1020 타깃층의 고객 감성을 연결시켜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우수한 반응을 얻은 브랜드였다. 특허를 획득한 소재와 우수한 품질로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서브 브랜드를 개발해 성숙기에 접어든 여성용품시장에서 해마다 매출 성장세를 지속했다.

    깨끗한나라의 생리대 ‘순수한면 100% 유기농 순면커버’

    이보다 앞서 2010년 12월 출시한 ‘순수한면’은 당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내 메인 플레이어로 등극한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우수한 미국산 원면을 사용한 제품에만 부여되는 ‘USA 코튼’ 로고를 국내 여성용품 최초로 취득한 100% 자연 순면커버 생리대로 민감한 피부의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품으로, 염소표백, 형광, 색소, 포름알데히드 등의 유해 성분을 사용하지 않았다. 저온 발효 한약재를 함유한 ‘순수한면 보감’, 중앙볼록 맞춤커버를 적용한 ‘순수한면 맞춤커버’, 유기농 순면커버를 적용한 ‘더 건강한 순수한면’, 유기농 순면 흡수체를 적용한 ‘더 건강한 순수한면 탐폰’ 등을 출시하며 소비자에게 더 좋은 제품을 선보였다.
    이밖에도 1만 2,000명의 소비자 의견을 반영하여 개발한 ‘메이앤준’(2018), 민감한 Y존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콘셉트로 개발한 ‘디어스킨’(2020) 등의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