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도레이와의 만남으로 비상의 날개를 달다
제1절. 좋은 만남, 좋은 소재, 좋은 세상 만들기
3. IT소재사업, 디스플레이 산업의 총아
2000년대 들어 화학소재 사업의 전문화, 고도화를 추구하던 국내 화학기업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정보소재 산업에 관심이 증폭되면서 신소재 사업에 대한 탐색전이 활발해졌다. 세계 산업구조의 패러다임은 완성품 중심에서 서서히 부품·소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핵심 소재 메이커로 부상하려는 목표를 가진 도레이새한은 IT산업계의 기류변화를 예의주시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시장에서는 IT 관련 산업이 급부상했기 때문이었다.
도레이새한은 전자·정보소재 사업 중 IT소재용 가공필름사업에 주목해 2000년 12월 새한에 가공필름 사업 인수를 공식 요청하고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2001년 당시 새한의 2개 컨버팅 라인(Converting Line)에서는 필름을 후처리 가공한 전기·전자용, 산업용 제품 등 30여 종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가공필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도레이새한은 도레이가 한국의 디스플레이(Display)업체들에게 폴리에스터 가공필름을 대규모로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폴리에스터 베이스 필름에 코팅을 하거나 증착, 라미네이션 등의 후가공 과정을 거치면 가격이일반 필름보다 무려 7~8배 이상이나 높아졌다.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사업이라 판단한 도레이새한은 한국 내 현지생산으로 가격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소신으로 무장해 도레이 본사 경영진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2002년 2월 도레이새한과 새한은 라인 인수 관련 MOU를 체결했다. 도레이새한은 2002년 5월 정식으로 IT소재사업부를 발족했다. 이로써 도레이새한은 필름 원자재 공급업체에서 IT소재 사업으로 진출하며 비약적인 성장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새한에서 인수한 2개의 코팅라인에서는 인쇄회로기판용 소재인 단면 CCL과 자동차 윈도용 코팅필름, 반도체용 리드락 테이프(Lead Lock Tape), LCD용 광확산 시트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컨버팅 라인의 이니셜을 붙인 CL-1호기는 콤마코터(Comma Coater) 라인으로 전자·정보소재 사업에 활용이 가능했다. CL-2호기는 마이크로 그라비어코터(Micro Gravure Coater)로서 실리콘 이형필름과 광확산 필름 등 디스플레이 소재 생산에 적합할 것으로 판단됐다.
2000년대 초반 전자·정보 소재시장의 주류는 디지털 캠코더·노트북·복사기 등에 채택된 인쇄회로 기판용 소재였다. 또한 휴대전화, LCD, PDP 등 전자제품의 슬림화 트렌드를 타고 PCB시장은 연성보드로 지칭되는 FPCB(Flexible Printed Circuit Board, 연성인쇄회로기판)로 교체될 전망이었다.
도레이새한은 FPCB용 소재 생산을 위해 도레이의 앞선 공정기술과 설비기술을 들여오는 한편 KCC(Kapton Copper Clad)제품을 도입, 생산기반 마련에 들어갔다. KCC 사업은 도레이새한의 코팅라인 인수를 계기로 본격적인 생산기반이 구축되면서 도레이에서 기술이전을 허가했다. 이러한 호기를 놓치지 않고 도레이새한은 선진 기술습득을 위해 생산인력 전원을 도레이 현지에 파견하는 등 6개월에 걸친 연수를 통해 도레이의 노하우를 배우며 착실하게 여건을 다져갔다. 구미공장에서도 도레이에서 파견된 기술진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1년여에 걸쳐 설비개조를 진행했다. 이처럼 설비개조와 생산기술을 높이는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영업부에서는 도레이 제품을 수입, 판매하면서 영업망을 키워갔다.
2003년 3월부터 독자적인 생산을 시작한 KCC 사업은 도입 후 불과 1년 만에 흑자를 실현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4년에는 KCC 단품으로 영업이익이 30%에 육박하는 성과를 올리며 FPCB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갔다. KCC의 본격 생산과 함께 CL-2호기에서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용 이형필름, 광확산 필름 등 디스플레이 소재 생산도 시작했다.
2002.04 가공필름사업 자산양수도 계약 체결
한 걸음 더! 첨단소재 성장 기반 구축
2000년대에는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었지만, 부품·소재의 대부분을 해외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원가경쟁력을 갖춘 국산 소재의 생산이 곧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했다.
도레이새한은 2002년 8월 CL-2의 광확산필름 개발에 성공했고, 2004년 7월 증설한 CL-3 호기를 본격적으로 가동해서 전용 생산 라인체제를 갖춰 나갔다. 또한 삼성전자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함으로써 원재료, 기술, 고객사의 3대 조건을 만족시키며 누구보다 빨리 시장지배력을 키워나갔다.
2004년부터 광확산 필름 원료인 고투명 폴리에스터 필름을 자체 생산함에 따라 베이스 필름부터 광확산 필름인 완제품까지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수익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2005년부터 휴대폰,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모바일 기기의 필수 소재인 박막 확산필름을 개발해 판매영역을 다양화하였고,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 렌즈용과 프리즘 용도의 기능성 확산필름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폴리에스터 증착필름(Metalized Film)의 국내 시장 성장에도 대비하기 위해 2003년 4월 설비를 신설했다. 기존 증착필름 라인인 ML-1, 2호기에서 풀생산, 풀판매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도레이의 계열사인 TAF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품질향상에 나섰다. 범용품 위주의 사업체계에서 벗어나 금은사(金銀絲)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이 블루오션에 진출하는 길임을 인식하고 2004년 3월부터 도가니 타입의 새로운 증착라인 ML-3 가동을 개시, 금은사용 제품생산에 들어갔다.
도레이새한은 2004년 6월 도레이로부터 평활 MLCC 이형 용 베이스 필름 제조기술을 도입해 국내 최초로 MLCC 필름 양산에 성공했다. 또 같은 해 9월에는 광확산 필름 판매량에서 국내 1위를 달성했다. 2005년 11월에는 편광판이형용 베이스 필름 제조기술을 도입해 역시 국내 최초로 편광판 이형용 필름을 양산하여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 필름사업부는 2003년 7월 영업조직을 개편하고 필름마케팅팀을 신설하여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2003년에 필름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10%를 넘어섰으며, 2004년에는 필름 판매량이 10만 톤을 돌파했다. 다양한 신제품 개발, 기존의 폴리에스터 수지와 베이스 필름을 기반으로 한 가공필름 사업의 일관 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고부가가치 창출을 향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05년 매출액은 6,611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최초로 MLCC 필름 양산 성공, 이를 사용해 만든 MLCC
메탈로얄, IT소재 사업의 새로운 도전
휴대폰이나 LCD 등 디지털 전자기기에 구동 드라이버가 없으면 LCD화면 자체가 뜨지 않기에 FCCL(Flexible Copper Clad Laminate : 연성동박적층필름)은 그만큼 중요한 핵심재료에 해당한다.
휴대폰 폴더와 같이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동(銅)이 적층 된 필름’은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부품소재에 필수였다. 기존의 회로기판은 필름-접착제-동박의 3층 구조인데 반해 진공증착과 도금기법만을 이용해 완성하는 2층 FCCL은 3층보다 두께가 얇아 경박단소화 트렌드에 잘 맞아 더 환영 받는 추세였다. 도레이새한은 회로기판 소재가 필름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FCCL의 생산 가능성을 신중하게 타진했다. 특히 2층 FCCL은 필름 표면에 직접 구리도금을 입힘으로써 내열성, 내굴곡성이 좋고 얇은 미세회로 패턴을 요구하는 제품에 적합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어 더욱 주목하게 됐다.
당시 도레이가 ‘메탈로얄(Metaloyal)’이라는 브랜드로 2층 FCCL시장에 진출해 있었지만, 우리나라 회로재 시장은 일본 스미토모금속광산그룹이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내 COF(Chip On Film)용 드라이버 IC에 사용되는 2층 FCCL제품은 스미토모의 가격정책에 따라 시장이 휘둘렸다. 소재 국산화가 절실하고 연간 시장성장률이 30% 이상인 고수익성 사업이라는 점에서 도레이 새한은 사업화 가능성을 확신했다.
이에 도레이새한은 스퍼터링 방식 2층 FCCL의 사업화 의지를 굳히고 도레이 측에 기술이전 의사를 타진했으나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에서도 2층 FCCL은 스미토모와 도레이의 자회사 TAF 단 2개 회사만이 생산하는 고수익 제품이어서 수익성과 기술 유출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다. 도레이새한은 자체개발을 선언하고 신사업팀 내에 TF개발팀을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에 돌입했다. 2년간의 노력 끝에 자체개발 인증샘플을 내는 단계에 이르자 도레이의 분위기가 전환되더니 2006년 도레이 상무회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사업화에 돌입할 수 있었다. TAF로부터 기술이관을 받으면서 도레이새한은 300억 원을 투입하여 생산라인과 설비를 갖추어 본격생산을 준비했다. IT소재의 가격이 빠른 속도로 인하되는 추세였지만 한국은 LCD시장이 활황이어서 메탈로얄의 판매는 급신장했다.
2층 FCCL 사업은 도레이새한이 단독으로 처음 시도하는 IT소재 개발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기존사업 증설이나 기술이전이 아닌 새로운 IT소재 개발에 도전해서 성과를 거둠으로써 향후 신소재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디지털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연성회로기판의 원판소재인 FCCL
2006.10 2층 FCCL 기공식
기술연구소, R&D 역량을 확충
도레이새한 출범 당시 R&D부문은 인수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2000년 12월 기술연구소를 발족했다. 기술연구소에서는 폴리에스터 중합기술의 개량, 필름용 폴리에스터 칩 개발, 폴리에스터 필름의 새로운 용도 개발, 기존 제품의 성능 향상을 위한 공정 기술의 개발, IT(Information Technology), BT(Bio Technology), ET(Environmental Technology) 등 21세기형 사업의 검토, 연구 기획과 관리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초대 연구소장인 김상필 상무를 필두로 모두 22명으로 구성되었고, 연구시설은 3차원 표면조도계 외 9종을 구비했다. 2002년에는 도레이의 특허권 운영 제도를 도레이새한에 일부 도입해 운영체제를 구축하였다.
2003년부터 R&D 투자를 늘려 나가기 시작해 2008년에는 출범 당시보다 5배 이상 늘어난 매출액 대비 1.3%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연구개발 인력도 50명을 넘어서서 직원 대비 연구원 비율이 2.3%에서 5.2%로 높아졌다.
도레이새한의 신제품율은 2002년 3%에서 2003년 3.5%, 2004년 4.1%, 2005년 7.9%, 2006년 16%, 2007년 18.2%, 2008년 17.9%에 이르렀고 개발 성공률도 84%를 기록하여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한편, IT제품의 짧은 라이프 사이클과 한국 IT소재시장의 활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도레이는 도레이새한에 기술이전을 결정했다. 최초의 이전 기술은 광확산용 베이스필름 제조 기술이었고, 이어서 LCD 부재(副材)인 편광판이형용 베이스 필름 생산 기술, 편광판 보호필름 제조기술, MLCC 이형용 베이스 필름 제조 기술 등 2003년부터 3년 동안 약 5건의 베이스 필름 제조 기술을 도레이로부터 도입했다.
2004년부터는 도레이의 ‘출향(出向)제도’로 기술연수가 시작되어 매년 기술 인력 2명씩 도레이로 파견하여 교육을 받게 했다.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약 3년간은 도레이 도입 기술과 자체 개발 기술의 비율이 6:4일 정도였지만 차츰 1:9의 비율로 도레이새한의 자체 개발 기술 비중이 커졌다.
2005.06 구미 3공장(현재 구미 4공장) 기공식
2004.02 구미 국가산업 4단지 투자협정 MOU 체결식
신사업 진출, 구미 3공장(현재 구미 4공장) 신설
IT소재산업은 가격 인하 요구에 항상 시달리게 되고, 최종 완성된 전자제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바로 소재 가격인하 압력이 돌아오는 부담을 늘 안고 있어 안정적인 수익성 유지가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이 D램에 이어 플래시 메모리에서도 세계 정상에 올랐고, TFT LCD 등 디스플레이 관련 산업도 삼성, LG 등 한국의 세계적 기업들이 생산량과 기술면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있어 한국의 IT소재 사업은 향후로도 계속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도레이새한은 2006년 다이싱(Dicing)필름 위에 접착제를 코팅하는 WBL(Wafer Backside Laminate)의 양산판매를 개시하면서 반도체 패키징 분야의 사업을 점차 확대해 갔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열수축필름의 판매, AR(Anti Reflection)필름의 품질승인, 편광판 보호필름의 판매 등을 연이어 개시하며 IT소재의 활황기를 맞았다.
AR필름은 정밀기술을 요구하는 만들기 어려운 제품이었다. 도레이새한은 AR필름의 개발에 기초기술개발, 양산기술개발, 사업화 및 품질확보의 3단계 절차를 밟았다. 첫 단계는 2003년부터 2년간 도레이의 필름가공개발센터와의 협력 개발 형태로 진행했다. 이는 최초의 공동 개발이라는 점에서 도레이새한의 실력이 어느 수준에 올랐는지 가늠하는 지표로 볼 수 있었다.
도레이새한은 IT소재의 수요가 날로 증가하면서 라인증설을 계속하고 한편으로는 신제품 개발로 점점 수요가 늘어나는 광학용필름 생산을 위해 선행투자를 감행해야 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광학 후물라인의 증설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한국 내 경쟁사에서는 증설계획이 없어 도레이새한이 조기에 증설을 추진한다면 시장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2004년 2월에는 도레이와 경상북도가 구미 국가산업 4단지에 관한 투자협정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2005년부터 향후 5년간 4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도레이 새한은 2004년 9월 국가산업 4단지 외국인 전용단지의 19만 8,347m² 부지에 구미 3공장(현재 구미 4공장) 착공에 들어갔고, 2005년 6월의 기공식을 거쳐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구미 3공장 건설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P O W E R I N T E R V I E W
창의적인 지적(知的) 활동이 기업의 성공을 낳는다
전해상 대표이사 사장
실리콘이형필름의 인라인 생산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된 건 아닙니다.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생산 쪽에서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라인과 롤이 엄청나게 오염되는데 그걸 다 닦아내려면 너무 힘들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손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생산팀장으로 있었는데 발안자가 가져온 아이디어를 보고 해보자고 했습니다. 발안자 본인이 상당한 자신감과 더불어 실행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제가 보기에도 상당히 획기적인 발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해서 우리 도레이첨단소재는 오프라인과 인라인 생산을 모두 할 수 있게 되었고, 원가를 절감해서 가격경쟁력을 갖춤으로써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기술로 작업을 하면서도 거기에서 창의성을 끌어낼 수 있는 지적 활동을 멈추지 않아야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런 기술들로 특허를 받고 지적 재산을 계속 쌓아가는 것이 첨단소재 회사의 위상에 걸맞은 연구개발 활동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