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더 나은 첨단소재로 풍요로운 미래를 선사하다
제1절. 탄소섬유, 한국 최초·최대의 탄소섬유 메카

1. 미래 산업의 쌀, 탄소섬유

인류가 직면한 환경·에너지 문제에 중요한 솔루션을 제공하여 지구차원의 과제 해결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탄소섬유는 21세기 현재 가장 최첨단에 서있으면서 제일 주목받는 소재가 됐다. 첨단소재라는 인상 때문에 최근에 개발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근원은 에디슨이 살던 시대까지 올라간다. 탄소섬유는 일반적으로 아크릴섬유 또는 석유 피치 등을 섬유화한 뒤 특수한 열처리 공정을 거쳐 만든 섬유상의 탄소물질이다. 에디슨은 1869년 대나무를 탄화시켜 만든 탄소섬유로 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들었다. 이는 여러 면에서 화학합성섬유의 시발점이 되는 물질을 개발하게 했고 그 물질들은 당대 최신의 소재여서 오늘날의 첨단소재산업의 모태가 됐다.



대규모 투자와 기술 장벽이 높은 탄소섬유

우리나라에서 탄소섬유가 제일 먼저 대중적으로 상품화된 것은 낚싯대와 골프채 등의 스포츠 분야였다. 7~80년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였던 우리나라 조립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는데 낚싯대와 골프채의 경우에는 많은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OEM을 받아 만들어 수출했다.
오늘날의 탄소섬유는 가장 진보된 분야에 적용하는 첨단소재로서 미래소재로 각광받고 있지만 기술 장벽이 높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라 한국의 여러 기업들이 도전했으나, 많은 한계에 부딪히며 결국 철수하고 말았다.
탄소섬유는 스포츠·레저 분야를 넘어 육상 및 해상 수송 분야, 신재생 에너지 분야, 전기· 전자 부품 및 공정재료, 토목건축 분야, 항공우주 분야 등의 전 사업으로 용도가 확대되어 앞으로의 활용범위도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탄소섬유사업의 의미는 단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당위를 넘어 앞으로 일상생활에서 인류의 편의와 지구환경 보호를 통한 사회공헌을 구현할 의무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도레이의 집념과 땀의 결실

도레이는 소재를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데 상당한 인내의 시간과 투자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집념의 산물이라 말하는 탄소섬유의 경우만 보아도 연구·개발해 온 역사가 거의 60여 년에 다다른다. 1961년 아크릴 기반의 탄소섬유 개발을 시작으로 1971년 상업생산을 개시하여 본격적인 사업화로 들어서기까지 R&D 비용만 무려 1조 3,000억 원을 투입했다. 일각에서는 지속적인 적자만 내는 탄소섬유사업을 ‘돈 먹는 벌레’라고 비하하기도 했지만, 이런 시선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개발에 매진해온 결과 스포츠 분야를 시작으로 항공기의 2차 구조재까지 진입하며 사업의 발전 방향을 세워왔다.
도레이는 소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초기부터 탄소섬유로만 만들어진 항공기를 목표로 ‘검은 비행기를 띄워보자’라는 사업비전을 수립했었다. 계속된 노력으로 도레이는 2005년 11월 보잉사와 탄소섬유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세계적인 탄소섬유 메이커로 각광받고 있으며 보잉사로부터 유일하게 인증을 받고 있다.
도레이는 1971년 개발에 성공한 탄소섬유에 ‘도레이카(TORAYCA)’라는 브랜드를 붙였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탄소섬유이자 실질적인 세계표준으로서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시작부터 수십 년간 적자를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도레이의 탄소섬유사업은 2018년에만 2조 4,000억 원 매출에 1,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큰 성과를 올렸다.

“일본 도레이 연구소에 가보면 동경대 화학과 출신인 직원이 있는데 30년 동안 섬유의 유제와 오일만 연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에는 그런 사람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에 노벨 화학상을 8번이나 받았던 겁니다. 시작해서 깊이 파고들어 끝까지 가는 무한추구의 정신,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신입니다.”

이영관 회장

탄소섬유 원사

해외의 많은 화학기업이 탄소섬유를 개발하고도 용도 개발의 벽에 부딪혀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가운데, 도레이는 그 재료의 가치를 꿰뚫어봤다. 특히 낚싯대나 골프채 등 취미나 운동에 관해서는 매니아층이 있어 용도를 전개해 나가기 용이하다는 자세로 스포츠 분야에서부터 사업을 육성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항공기 용도를 목표로 끈질기게 추진했다. 이러한 재료의 가치를 꿰뚫어보는 힘과 강인한 의지가 도레이의 연구기술 개발의 강점이며 진정한 이노베이션을 창출하는 배경이었다.
탄소섬유 분야의 일본과 한국의 격차는 수십년이 넘는다. 우리나라도 2007년 이후 정부와 국내 업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탄소섬유 개발에 참여했다. 그렇게 민·관 공동 투자로 3,500억 원 규모의 탄소소재 기술집적화 사업을 추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업체들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진출 계획이 무산되었다.
현재 세계 탄소섬유 시장은 일본의 도레이, 토호테낙스(Toho Tenax), 미쯔비시레이온(Mitsubishi Rayon) 등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 당시 전 세계 탄소섬유 생산량은 약 6만 톤 규모였고 연평균 12%의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었다. 2009년 시장규모는 15억 달러였는데 2025년에는 127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은 비행기를 띄워보자

2014년 11월 언론을 들썩이게 했던 큰 뉴스가 있었다. 일본 도레이가 미국 보잉사에 1조 엔(당시 약 9조 3,000억 원) 상당의 복합재료 공급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었다. 도레이가 돈 먹는 벌레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1971년부터 꿈꿔왔던 탄소섬유로 만들어진 항공기를 만들어 ‘검은 비행기를 띄워보자’라는 사업비전이 실현된 것이다.
보잉사가 제작하는 보잉787은 ‘드림라이너’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새로운 기술들이 많이 적용됐고, 특히 날개를 비롯한 동체 등 많은 부분에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사용했다. 이로 인해 연비는 20% 개선되고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배출도 각각 20%, 15%가 줄어 연료비 절감과 환경보호라는 성과를 동시에 올릴 수 있었다. 일본 도레이는 탄소섬유 역사에서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개발에 참여했다. 1959년 일본 오사카공업시험소의 신도 아키오(進藤昭男)박사가 폴리아크릴로니트릴(PAN)섬유(보통 ‘아크릴’로 통칭)를 사용하면 높은 성능의 탄소섬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도레이는 신도 박사의 연구실에 즉시 연구원을 파견하여 양산화 연구를 시작했고 1971년 ‘도레이카(TORAYCA)’ 원사인 T300 제조에 성공했다. 이를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1982년 보잉757, 767, 에어버스 등의부품에 도레이의 탄소섬유가 적용됐고,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화물칸 문에도 T300을 이용할 정도로 최첨단 우주 항공 분야에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처음 개발을 시작했을 때는 수십 년간 적자를 봤지만 도레이는 포기하지 않고 연구 개발에 계속 매진하여 현재는 전 세계 탄소섬유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