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더 나은 첨단소재로 풍요로운 미래를 선사하다
제1절. 탄소섬유, 한국 최초·최대의 탄소섬유 메카

2. 거대 아시아 시장을 향한 첫 행보

도레이의 닛카쿠 아키히로 사장과 도레이첨단소재의 이영관 사장은 2011년 1월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주요 언론사와 일본의 NHK, 일본경제신문 등 한·일 양국의 기자 수십 명이 운집한 가운데 도레이첨단소재의 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닛카쿠 사장은 도레이첨단소재로 탄소섬유 기술을 이전해 2011년 초 구미에 탄소섬유 생산공장을 착공하고 2013년 1월까지 2,200톤의 양산체제를 갖춰 소재 국산화를 실현하고 관련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향후 지속적으로 규모를 확대하여 아시아의 중핵 생산거점으로 성장시켜 나갈 것을 천명했다.
이영관 사장은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2011년 한 해 동안 3,000억 원을 투자하여 탄소섬유사업을 필두로 필름과 부직포 라인을 증설하고 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글로벌 메이커로 부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1.01 도레이첨단소재 기자간담회

한국이 갖춘 산업 경쟁력을 선택

세계적으로 탄소섬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일본, 미국, 프랑스의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던 도레이는 아시아 시장이 커질 것을 예상하고 ‘세계 최고의 가격 경쟁력’을 가진 네 번째 입지를 검토했다.
오랜 검토 끝에 일본, 미국, 프랑스에 이어 네 번째 탄소섬유 공장을 한국에 짓기로 결정했다. 도레이는 중국 등도 후보로 검토했지만 한국이 중국보다 경영환경이 안정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미국, 유럽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으니 수출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 및 확대에도 한국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

“탄소섬유는 미국과 일본 등 몇 개의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기술이고, 전략자산에 바로 직결되는 소재여서 간단하게 기술이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도레이의 일원이지만 단순히 그런 관계로 탄소섬유 기술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영관 회장과 임직원들이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끊임없는 지원이 큰 힘이 되어 도레이에서도 기술이 전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지요.”

박서진 SB사업본부장 전무


도레이가 당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을 선택하지 않고 한국을 탄소섬유의 생산거점으로 선정한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첫째는 한국의 적극적인 요청이었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과 외투기업 혜택 등 탄소섬유 공장건립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도레이에게 심어줬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는 탄소섬유가 전략물자로서 갖는 중요성을 둘러싼 국제적인 정세에 대한 판단이었다. 핵무기, 전투기, 미사일, 로켓 등 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탄소섬유는 국제사회에서 계약에 의한 기술거래뿐만 아니라 기술의 무형이전 등 전반적인 관리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한국이 가진 전자, 자동차, 조선 산업 등의 발전 가능성과 여타 국가와의 경쟁력 비교, 각종 인프라 및 탄소섬유를 한국 내에서 생산할 때 가지게 될 확장성, 도레이첨단소재가 지난 10년간 보여준 소재 기업으로서의 끈질긴 도전과 성과를 바탕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닛카쿠 사장은 엔지니어들의 기술력과 연구·개발 인프라 등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탄소섬유 생산기지로서 최고의 입지라고 말했다.

도레이첨단소재의 신성장 동력, 탄소섬유

도레이첨단소재의 탄소섬유에 대한 사업구상은 2007년경부터 시작됐다. 한국에서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제품을 생산해내는 것이 소재회사로서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선택지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탄소섬유는 도레이에서도 최상위의 기술이다. 그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을 비롯해 몇 국가밖에 없다.
특히 이영관 사장은 탄소섬유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열의가 대단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도레이의 탄소섬유 기술 이전 방법을 모색했다. 내부적으로 탄소섬유사업에 대한 기획을 추진하고 수없이 많은 스터디를 거쳐 제안서를 작성해 일본 도레이에 보냈다. 거절이 반복될 때마다 모두 한 마음으로 달려들어 한국 내에서의 투자에 대한 의사를 타진했지만 그 대답은 불가였다. 몇 번의 시도에도 거듭되는 반려에 지쳐 있던 2009년 7월, 당시 도레이의 닛카쿠 부사장과 경영기획실의 탄소섬유 담당 부장이 구미공장을 방문했다. 일본 도레이의 예기치 못한 방문에 고무된 도레이첨단소재는 이미 가동 중인 새로운 구미 3공장(현재 구미 4공장) 부지도 보여주면서 탄소섬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일본 도레이의 복심이 탄소섬유의 아시아 거점이 도레이첨단소재 쪽으로 기울었다는 확신을 받은 도레이첨단소재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얼마 후, 도레이첨단소재는 2009년 9월 일본 도레이의 마더공장(Mother Factory)인 에히메공장으로 견학을 가게 됐다. 이영관 사장은 견학을 하는 동안 일본 도레이의 탄소섬유 기술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반드시 탄소섬유사업에 대한 꿈을 이루리라 다짐했다.
사내 전문가로 이루어진 TFT를 구성하고 도레이 공무팀과 논의를 거쳐 공장설계에 돌입했다.
마침내 2010년 4월 도레이첨단소재는 ‘비전 2020 선포식’에서 일본 도레이와 탄소섬유사업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복합재료사업본부를 정식 발족했고, 김상필 전무가 그 수장이 되어 탄소섬유사업을 본격적으로 출범시켰다.

2011.06 탄소섬유 생산공장 기공식

탄소섬유 포장공정

산업계·학계의 이목이 집중

2011년 6월 드디어 도레이첨단소재의 구미 3공장에서 한국 최초의 탄소섬유 생산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이로써 도레이첨단소재가 그 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탄소섬유의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국내에 구축했고, 부품소재 및 완성품 업체와의 전략적인 기술협력으로 제품개발의 플랫폼을 조성했다. 또한 관련 부품소재 업체와의 협업으로 시너지를 창출하고 기술협력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지닌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국산화하여 세계 속에 복합소재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투자는 단기적인 이윤추구가 아닌 도레이의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탄소섬유 분야의 기술 이전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결정입니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도레이 회장

미래의 신소재로 각광받는 탄소섬유의 성장세를 간파한 국내 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2012년 당시 우리나라 연간 탄소섬유 수요가 2,000톤이었는데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시장성만 보아도 도전의 이유가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공장 건설의 보안과 기밀 유지를 철저히 했다. 기술보안이야말로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도레이첨단소재에서도 탄소섬유 공장을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내부 소수 인원에 불과할 정도였다. 설비 사진은 물론 공장을 짓기 위한 성토작업조차 일급기밀로 분류됐다. 경쟁사들이 공장의 외형과 설립 부지 면적, 건물을 올리기 위한 준비작업만 보고도 무엇을 생산할지, 어떤 설비가 들어갈지 내다보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